개발자가 되기 전에는 프로그래밍으로 먹고 살 수 있을지가 막막했다.
개발자가 된 후에는 더 막막해졌다.
높은 연봉을 받는 것을 받을 수 있을지 막막하고, 남다른 차별점을 가질 수 있을지가 막막하다.
이럴 때마다 내가 했던 방법을 이번에도 써보기로 했다. 그 간의 과정을 회고해보는 것이다.
개발자가 된지 3년 9개월만에 회고를 해본다니, 많이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왜 개발자가 되었나?
프로그래밍이 내게 즐거움을 주고, 내 불안을 없애주었기 때문이다.
잠깐 딴소리지만, 그림을 그려본 적이 있는가? 역설적이게도, 그림을 그리는 과정 자체는 그리 즐겁지 않다. 괜찮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디테일을 위해 엄청나게 긴 시간을 써야한다. 나는 초상화를 그렸었는데, 코를 그리는 데만 2시간 50분을 썼다. '이게 뭐하는 짓이지?' 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그런 식으로 눈, 코, 입, 머리카락을 그리고 나면 사람의 얼굴 하나가 도화지에 채워진다. 7시간을 그렸는데 얻을 수 있는 것은 그게 전부다.
하지만 그것으로 많은 것이 바뀐다. 아침에 첫째로 떠오르는 것은 어제의 그림이다. 일상의 중간에 몰래 스케치북을 꺼내본다. 어제의 그림을 펼쳐보면 부족한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다음엔 훨씬 더 잘 그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전 장들을 넘겨 지금까지 그린 것들을 보고 나면, 생각이 확신이 된다. 7시간 동안 고통스러웠지만, 덕분에 일주일이 즐거워진다.
군대 복무 시절, 후임이 프로그래밍을 할줄 알아서 나도 한번 해보고 싶어졌다. 후임은 백엔드 개발을 했었는데, 뭔가 따라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 프론트엔드를 택했다. 그림 하나를 그리는데 7시간이 걸렸지만, 프로그램 하나를 만드는데는 1년이 걸렸다. 그리고 그 1년의 기간동안, 아주 많이 고통스러웠다. IDE 가 없어서 처음엔 메모장으로 코드를 썼고, 얼마 안되는 휴식시간 동안 유튜브로 강의를 들었다. 나온지 8년이 넘은 옛날 개발 서적으로 공부를 했는데, 내용이 너무 불친절해 머리가 아팠다. 결과물은 처참했다. 인터넷에서 긁어온 코드들이 덕지 덕지 붙어 있어서 조금만 잘못 건드리면 버그가 났고, 내 프로그램을 쓰는 후임들은 그것을 칭찬해주면서도 불편한 부분들을 계속 말해주었다.
군대를 전역할 즈음에, 내가 그렸던 그림을 모두 버렸다. 이제 딱히 뭔가를 잘 그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내 꿈은 화가였지만 화가가 된 내 모습을 상상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프로그래머가 된 내 모습은 바로 눈앞에 있는 것처럼 선명하게 보였다. 돈은 많이 벌까? 야근은 많이 할까? 결혼은 할 수 있을까? 배는 많이 안나올까? 내가 작성한 코드를 다음날의 내가 고치고 있으리라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렇게 고친 코드가, 아마 이전 코드보다 훨씬 나을 것이다. 내가 평생 행복해지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프로그래머가 되었다.
결혼은 했고, 야근은 적당히 하고 있으며, 배는 계속 나오고 있다.
오늘은 몇달 전에 짠 코드를 고칠 예정이다.